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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와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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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조선 시대 본국검의 발달

     

      우리나라 검의 기원은 배달나라의 14대인 치우천황(기원전 2707년)이 청동검을 개발하여 중국의 황제의 군사를 물리친것이 그 기원이며, 그 당시 천문지리가 통달한 "자부선생"이란 대학자가 민족 고유의 도가 집대성된 "삼황내문경이란" 책을 지어 치우천황에게 바친기록이 단기고가, 계원사, 한단고기에 남아 전해오고 있다.

      이 시기는 부족국가의 탄생기이며 청동검의 시대이다. 한단고기를 보면 단군의 시대에 단전호흡과 명상을 통한 홍익인간 정신이 전파되었다고 한다.

    이 시대부터 본국검도의 수련법 중의 하나인 기공수련이 한민족 사이에 널리 전파되었음을 알 수있다. 이 시대에 발견된 유물 중 청동거푸집과 검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초기에는 청동검과 철제검이 동시에 사용되었고 약한 청동검은 가치를 잃어가고 철제검 중심으로 발전되었다.

      우리나라 고대 철 기술은 중국보다 발전되었는데 이는 특히 남부지방의 가야 중심으로 철이 발달되었다.

    고대 우리나라는 철 기술이 발달해 중국과 일본 등으로 수출되었음이 중국문헌에 남아 있다.

    본국검 재원의 고장인 창원에는 지금도 고대에 야외에서 철을 주조하던 야철지가 남아있고 철새 도래지로잘 알려진 주남저수지는 중국으로 철을 수출하던 갈대의 나라였던 것을 많은 유물로 통하여 알 수다.

      우리나라는 부족국가의 발달과 철기의 발달로 인하여 칼이 일상생활과 일정한 관련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의 경우도 넓은 영토로 인하여 철기, 목기, 석기, 짐승 등이 전투에 동원되었고(삼국지 제갈공명편) 우리나라와 기후가 비슷하고 여러 부족국가가 전투에 대비한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검은 생활의 일부분이되었다.

    중국고서에 나타난 우리검의 기록을 찾아보면<산해경(山海經)>해외동경(海外東經ㆍ기원전2300년께)에는「군자국은북쪽에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고, 짐승을 잡아먹는다. 두 마리 호랑이를옆에 두고 부린다. 그 나라 사람들은 사냥하기를 좋아하고 다투지를 않는다.」라고 나와 있는데, 단군시대에 중국 사람들이 조선 사람들을 보고 군자국이라 칭했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표현이다. 또한 우리 선조들은 현명하고 의젓한 선인풍류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또 《단국세기(檀國世紀)》에는 「11세 단군 도해(道奚ㆍ재위57년)경인원년(기원전1891년)단제께서오가에 명을 내려 열두 명산의 가장 뛰어난 곳을 골라 "국선(國仙)의 소도(蘇塗)"를 설치하게 했다.

       이 "소도"의 구성원이 천지화랑, 또는 국자랑이라 하였고, 그들은 머리에 천지화를 꽃고 다녔다고하는데 천지화는 무궁화 꽃이다. 이들이 6기를 수련하였는데 그 종류는 궁술, 본국검, 권박, 격투기, 말타기, 서예, 무용음악이다(한단고기 태백일사, 소도오제본기, 단군세기 기록). 그리고 많은 박달나무를 둘러 심은 후 가장 나무를 골라 한웅의 상으로 모시고 여기에 제사를 지내며 웅상(雄常)이라이름 했다. 이때 국자랑(國子郞)의 스승으로 있던 유위자(有爲子)가 계책을 올려 말하기를「생각하옵건데 우리의 신시는 실로 한웅천왕께옵서 개천하시고 무리를 거두심에 온전하게 하는 것으로 가르침을 세워백성들을 교화하였습니다.

     이에 천경신고(天經神誥)는 위에서 조술하신 바요, 의관을 입고 칼을 차는 것은 기꺼이 밑으로 본을 보이는 것이니.....」

    이러한 내용은 고조선시대의 검은 일상생활에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검의 제작기술도 매우 발달되었다는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한 그 시대의 검은 전투수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무기였으므로 검 제련 기술도 매우 발달하였던것이며, 중국 사람들이 전수해 갈 정도로 검 제련 기술이 우수하였던 것이다.

     치우가 갈로산의 쇠를 캐내어 칼을 제작하여 황제의 군사를 물리쳐 구혼에 올랐으므로 고조선 이전에벌써 우리나라에 생산되었으며, 고조선시대는 한층 더 검의 제조술이 발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