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화랑본국검
LOGIN MEMBERSHIP
  • 자료실
  • 보도및문헌자료실
  • 자료실

    보도및문헌자료실

    화랑 본국검을 찾아서~~제 1강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25회 작성일 23-04-03 12:17

    본문

    화랑본국검을 찾아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민족의 선사시대는 참으로 위대하고 웅장한 전통을 소유했다. 우리가 제도권에서 배우던 역사는 일제강점기 제국주의 사학자들에 의해 일부분 수정되고 축소, 왜곡된 역사로서 그것이 유구한 한민족 전체의 역사는 아니다. 언젠가는 배달국(倍達國)의 역사도 거론할 때가 올 것이다. 그리고 삼국유사. 삼국사기에 언급되어 있는 환국(桓國)의 역사와 함께 말이다.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고서 한단고기(桓檀古記)는 고려 말 행촌 이암이 저술한 단군세기(檀君世記), 신라시대 승려 안함로가 편찬한 삼성기(三聖記). 조선 중종 때 편찬된 태백일사(太白逸史). 고려 말에 씌어진 북부여기(北夫餘記) 등을 한권의 책으로 엮어놓은 사서이고 1911년 운초 계연수라는 학자가 지었다. 조선시대 초기에 조정에서 옛 역사를 기록한 고서를 수집했는데 200권이 넘는다 했다. 따라서 조선중기까지 그러한 고서들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우리나라의 사학계는 너무 삼국사기에 목을 매이는 것 같은데, 이제 글로벌시대에 역사 인식을 달리하고 위대한 민족역사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특히, 한단고기,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와 조선 숙종 때 쓰인 규원사화 등의 고서를 깊이 연구해야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이웃나라 중국은 25사를 그들의 정사로 인정하는데, 우리의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귀중한 사료를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한민족에게 억눌린, 상대적으로 열등감이 가는 역사는 슬그머니 수정하고 왜곡시켜 거꾸로 씨름판에서 몸싸움하듯이 상당히 뒤집기를 잘한다. 발해의 역사를 자기네들 변방의 역사로 뒤집기를 한 것이 그 예이며, 이제 고구려의 역사도 자기네들의 역사로 조작과, 뒤집기 작업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검의 시조는 치우(蚩尤) 장군

    삼성기(신라시대 안함로 저) 하편에 기록하기를,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파내류산 아래 한 인씨의 나라가 있는데 그 땅의 넓이는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에 이른다. 천해(天海)의 동쪽 땅이며 파내류의 나라라고 한다. (천해는 고려시대 북해(北海)라고 하였는데, 북해는 바이칼호수를 말한다)또 삼성기에, “천신의 뜻을 받들어 백산(白 山)의 흑수에 내려와 신시(神市)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배달(倍達)이라 지었다. 신시말기에 `치우천왕(蚩尤天王 기원전 2707) ‘이 있었으며, 청구(靑邱)를 개척하여 18세를 전하였으며 그 역년은 1565에 이르렀다고 기록했다.지금도 중국의 산동성 안에 치우의 능과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중국인들은 치우를 전쟁승리의 신으로 추앙했다고 한다. 치우천왕의 능이 산동성에 있다는 것은 청구국(배달국)의 활동 중심지가 산동성이었음을 뜻하는 것이리라. 요즈음 우리나라 축구 응원단 붉은악마는 승리의 신 `치우를 형상화한 것이고 그래서 치우의 기운을 받아 우리 선수들이 축구를 잘 하는가 보다.치우는 배달국의 14대 천왕이며, 그 당시 중국의 황제(黃帝)의 군사를 물리치고 황제를 신하국으로 삼았는데 중국인들은 그 사실을 감추고 역으로 뒤집어 씌어 이야기한다. 우리가 왜 치우천왕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치우야 말로 우리나라 검의 시조(始祖)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청동검을 제작하여 중국 황제의 군사제를 상대로 백전백승했기 때문이 그 이유이다.치우는 세계 최초로 철을 캐내어 투구와 갑옷과 무기를 만들었으며, 이를 본 중국의 황제의 군사들은 두려워하며 머리는 구리로 이마는 쇠로 만들어졌다 하여 이른바 동두철액(銅頭鐵額)이라 불렸다 한다. 관자도 치우가 검의 기원이다라고 했다. 따라서 우리나라 검의 기원은 배달나라의 제14대인 치우천왕(蚩尤天王)이 청동검을 만들어 중국의 황제 헌원(軒轅)의 군사를 물리친 것이 우리나라 검(본국검)의 기원이다.당시 천문지리에 통달한 자부선생이란 대학자가 민족고유의 도()가 집대성된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이란 책을 지어 치우천황에게 바친 기록이 단기고사, 계원사, 한단고기에 남아 전해 오고 있다. 중국의 황제는 이 책을 얻어 중국으로 가서 황제내경(黃帝內經)을 편찬하는 업적을 남긴다. 동양의 한의학계는 지금도 황제내경을 한의학의 기초로 삼아 중히 여긴다. 


    본국검은 한민족의 국검 (國劒)!

    어느 나라 어느 국가이든 그 나라에는 국가와 민족을 지켜온 병술들이 수천 년의 역사와 함께 계승되어 오고 있다. 어떤 경우는 신체의 기술로, 한 경우는 유구한 전통을 함축한 기록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특히 선사시대 치우장군으로부터 계승 발전된 우리나라 검술은 수천 년이 흘러오는 동안 어떤 형태로든 유유히 전승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따라서 민족무예 본국검특정한 검술명칭이 아니라 문자가 함축하고 있는 뜻인 (근본 본), (나라국), (칼검)”이다. , 선사시대부터 우리 민족을 보호하고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물리친 근본적인 것, 우리 민족의 뿌리정신인 나라의 국검國劒인 것이다.물론, 어떤 외부의 침략으로 그 맥이 사장되었다가 다시 부활하기도 한다. 그래서 역사서가 중요하고 사적 문헌 기록을 중시 여기는 이유이다. 우리나라 무술사에 가장 기록이 풍부한 기술적 자료를 보유한 본국검은 그러한 역사적, 기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민족문화로, 더 나아가 세계적인 문화 트렌드로 발전해야 한다고 본다.따라서 이러한 뜻 깊은 민족문화창달에 뜻 있는 독지가와, 기업가와 정부의 지원과 관심을 기대해 본다. 

     

    국검의 근원 소도(蘇塗)와 국자랑(國子郞)

    고조선시대에 발생한 소도(蘇塗)라고 하는 것은 제천단을 모셔놓고 민속적 의식을 치르는 일 뿐만 아니라 젊은 화랑들이 모여서 학문을 배우고 육기(六技)를 익혔다. 또 소도행사의 우두머리는 국선(國仙)이 담당했다.태백일사삼신오제본기에는, 소도가 서면 언제나 계()가 있는데 그것은 충, , , , 용의 오상지도(五常之道)이다.소도의 옆에는 언제나 경당을 세우고 미혼의 자제들에게 사물을 상습케 했는데, 그것은 글을 읽고, 활을 쏘며, 말을 타고, 예절을 익히며, 노래를 부르고, 주먹치기(수박), 검술(본국검)등의 육기를 말한다.이 화랑제도는 고구려 신라, 백제에도 세습되어 졌다. 한편으로는 무사도의 상징이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민족종교적으로 이념화하여 무속신앙으로 발전하였다. 


    본국검은 국선화랑의 주력 무예 이였다

    기록상으로는 신라시대의 황창이 본국검의 효시라고 하지만 화랑풍류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본국검이 뒤따랐던 것이다. 즉 국선화랑과 본국검은 활과 화살 관계와 같다.따라서 화랑풍류의 역사는 본국검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한다. 그 정당성은 조선 정조의 무예도보통지가 입증하고 있다.무예도보통지(1790년 정조 명선)의 본국검 편에 보면,황창(黃倡)은 황창(黃昌)이라고도 한다. 곧 신라에 설치하였던 화랑(花郞)이다~~ 술랑(術郞), 영랑(永郞), 남랑(南郞), 안상(安詳)의 사선랑(四仙郞)이 이 같은 이들이다. 그런고로 황창랑이다.화랑의 도중(徒衆)이 수천이나 되는데 서로 충성과 신의를 닦았다. 이제 황창랑으로 인하여 본국검의 연기(緣起)가 된다.모원의(茅元儀, 중국 명나라 장수 1594~1640)도 검보를 조선에서 얻었다고 생각된다. 이에 서역(西域)의 등운(等韻)에 비하였음은 이는 조선이 스스로 본국의 보를 창안한 것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따라서 본국검은 화랑들의 심신수련과 구국 충정을 위한 검법이었다. 


    본국검은 창시무예 신검(新劒)인가?

    이러한 역사적 사료가 증명하고 그 기법까지도 명확하게 기록되어 고증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작금의 어떤 무예인들과 학자는 본국검이 신검(新劒,새로 생긴 검술)이 아닌가 하고 의구심을 가진다.이는 너무나 무책임한 발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분명히 무예도보통지 본국검 편에는 본국검은 화랑의 한사람인 황창으로부터 연기(緣紀)가 된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명확하게 화랑의 검술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두 눈을 뜨고 글을 읽지 못하는 맹인 행세를 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또한 무예도보통지의 본국검에 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다음편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