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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화랑정신 본국검(花郞本國劒)과 태권도(跆拳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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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93회 작성일 21-05-0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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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화랑정신 본국검(花郞本國劒)과 태권도(跆拳道)
    · 작성자정보홈지기   - Homepage : http://www.bonkukkum.com
    · 글정보Hit : 6164 , Vote : 828 , Date : 2014/08/13 17:2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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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산총사 칼럼 1(2014. 8, 5)            
                
                                
                                    화랑정신 본국검(本國劍) 과 태권도(跆拳道)

                                                                                                                        

                                                                                                                    사)대한전통무예진흥회
                                                                                                                         사)대한본국검협회
                                          
                                                                                                                                會長 李 大山



    한민족의 역사 속에는 유구한 전통문화의 사상적 이념과 수천 년 호국의 정신으로 나라를 지켜온 강인한 상무정신이 근간이 되어 면면이 계승되고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땅덩어리는 반 토막 반도이다. 3면이 바다에 막혀 있고 북쪽은 장막으로 막혀있다. 그러나 남북이 통일되면 국토가 남북 3천리의 영토가 된다. 옛말에 3천리 금수강산이란 말이 그래서 하는 말이다. 통일이 되면 북쪽 평양을 거쳐 압록강을 지나 육로로 중국의 실크로드를 경유하여 유럽으로 건너 갈 수도 있다. 이 얼마나 부러운 일이냐.

    그러나 독자 여러분, 고조선 시대에는 우리영토가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자그마치 동서 2만 리 남북 5만 리다. 북쪽으로는 몽고를 포함하고 서쪽으로는 현재 중국 국토의 절반인 동부지역을 차지한다. 고조선 이전의 우리나라 배달국의 수도는 지금의 중국 산동성에 위치한 ‘청구국‘이었고, 배달국의 14대 임금인 치우천왕蚩尤天王(일명 치우장군)의 비석이 지금도 중국의 산동성에 굳건하게 세워져 있다. 한서(漢書) 지리지에는 치우천왕의 능이 산동성 동평군 수장형에 있다“고 했다. 시간 있으면 직접 가서 확인해보라.

    치우장군은 중국의 황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황제를 신하로 삼고 치우장군이 신하 ‘자부선인紫府仙人‘으로 하여금 중국에 삼황내문경三皇內門經을 전해주어 한민족의 역, 도, 무, 술을 전해주었으며, 그중에 황제내경은 오늘도 한의학의 지침서로 존재하고 있다. 한의학이 중국에서 전래되었다? 아니다. 그 설을 뒤집는 역설이 바로 황제내경이다.
    진晉나라 때의 도인 갈홍葛洪(283~343)이 저술한 ⟪포박자⟫에는 헌원과 신선도에 관해 기록하기를, “옛날에 황제가 동족으로 청구에 이르러 풍산을 지나 자부선생을 만나 뵙고 삼황내문을 받아 이로서 도道를 얻었다”고 적고 있다. 이것을 가져가 중국 황제가 황제내경을 지었다.

    주역周易도 마찬가지이다.
    태호 복희는 배달국의 5대 태우 환웅의 막내로 태어나 배달국 신시에서 우사라는 직책을 맡으며 역易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환역桓易이며, 후대로 오면서 복희팔괘伏羲八卦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의 서량지 교수가 ⟪중국사전사화⟫에서 말하기를, “역법曆法은 東夷동이가 창시했으며, 소호少嘷 이전에 이미 발명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의 상고 역사 속에는 강인한 호국무예와 상무정신이 근간이 되어 강인한 국방력으로 국가를 통치하였기에 가능하였다.

    문화융성정책 전통무예 진흥이 대안이다

    우리나라 전통문화산업에도 여러 분야가 있다. 예를 들면 전통 의류 세계화 사업, 전통도자기 그릇 제조 사업, 전통음악, 전통 악기의 세계화 사업, 전통무예예술 공연, 그림, 다양한 전통 음식, 민속놀이와 상품의 개발 사업, 전통사극 영화산업, 전통문화 유산 보급 사업, 전통무예 발굴 세계화 사업, 전통 건축의 해외 보급 사업, 한국 고유 전통교육의 지구촌 보급 사업 등 무수한 분야와 종류도 알고 보면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 특히 아직 국내에서 활성화 되지 않은 전통무예의 개발과 사업화이다. 국가의 다양한 분야의 문화 산업화는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국민 복지 향상과도 직결된다.

    그러므로 전통문화 즉, 그 중 전통무예 문화의 콘텐츠 사업화로 대학생들의 졸업 후 진로를 다소나마 해결하고 일거리 창출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민의 질 높은 문화 활동과 문화생활로 국민 행복감을 고취 시킬 수 있어서 좋다.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무예 개발 케이스가 있다. 전통무예 태권도의 예를 들어 보라, 태권도의 발전으로 인해 대학 졸업생들의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 되었고, 그에 다른 도복 제작 회사 경기에 필요한 경기화의 개발사업화, 전자 호구의 개발로 회사의 창업, 전국 3만 개의  체육 도장 사업화로 일자가 늘어나며, 수련 학생들을 운송하는 버스의 운전사 채용, 인솔 강사의 채용, 지도 사범의 채용 체육 도장 사무 관리자의 채용, 해외 170개국에 지도 사법 파견 등으로 약 1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었고, 국, 내외 회원 약 7,000만 명, 이는 남과 북을 합친 인구수와 같다. 해외 170개국에 우리 대한민국의 국위를 선양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외화벌이와 국내 내수 경제 활성화에 크게 도움 되고 있다. 태권도의 자산적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200조에 이른다고 한다. 상상을 초월한 액수다. 주먹치고 발차는 단순한 무도종목 하나가 이렇게 대한민국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다니. 이것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문화를  지닌 한민족의 저력에 의한 결과물이다.  

    또한 전통무예의 국민 지도를 통해 국민의 상무정신 고취와 선조로 부터 전해온 전통무예 수련 체험으로 자라는 청소년의 체력 향상은 물론 강인한 정신력 즉 인내심, 극기심을 배양하여 청소년의 인격과 덕성을 길러 국민의 정신적 건강과 육체적 건강 향상으로 국가의 무형성장동력을 갖추게 함으로써 국가의 무한한 경쟁력을 드높인다. 따라서 다양한 전통무예의 활성화는 국민의 건강증진으로 국민의료보험료의 지출을 줄이고 국민행복지수를 향상시킬 것이다.

    따라서 예부터 전래되어온 전통무예를 개발하여 국가적 무예 콘텐츠로 육성해야할 필요성을 느낀다. 진심으로 우리 국가가 책임감을 가지고 육성해야할 진정한 전통무예가 여러 종목이 존재한다. 다음 기회에 종목 한 가지 한 가지 심도 있게 다루기로 하고, 우선 그 중에서 태권도 다음으로 국가적 문화 브랜드로 육성할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비축한 종목이 바로, 우리 민족 수천 년의 역사와 함께 전승되어 온 “민족화랑무예 본국검”이다.  

    ‘독도’는 우리 땅, ‘본국검(本國劒)’도 우리 것

    본국검은 삼국시대에 고구려, 신라, 백제의 무사집단인「화랑도」「조의선인」「무사도」등을 중심으로 무술 연마를 위하여 사용한 우리 고유의 민족무예이다. 고려시대에는 북반무사와 남반무사가 양립하여 고구려의 무예와 신라, 백제의 무예가 양존하여 오다가, 조선 정조 때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가 편찬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본국검으로 수록되었으며, 조선중기이후 보군의 무과시험으로 채택되어 병법으로 활용되어온 한민족의 전통무예이다.  

    그 후 일제 강점기 사학자 안자산 선생이 편찬한 조선무사영웅전(朝鮮武士英雄傳, 1919)의 기록에 「이것은 조선 임진란 당시부터 격검법(擊劍法)이 크게 발달하여 고법(古法)을 더 연구한 것도 있고, 타방(他邦)의 법을 취하여 새로이 첨가(添加)함도 있어 그 기법의 종류를 모두 십이문(十二門)으로 정(定)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본문(本國劍門)에서는 (1)수박(手搏), (2)장도(長刀), (3)예도(銳刀), (4)조선세법(朝鮮洗法), (5)교전(交戰), (6)제독검(提督劍), (7)본국검법(本國劍法), (8)쌍검(雙劍), (9)마상검술(馬上劍術), (10)월도(月刀), (11)협도(狹刀), (12)곤방(棍棒), 등 총 12문(十貳門)을 본국검의 수련과목으로 정하여 현재까지 전수되고 있다.
      
    또한 ⟨동경잡기(東京雜記, 고려시대 풍속도⟩에 의하면, 황창랑(黃倡郞)이라는 신라 소년이 백제왕 앞에서 검무(劍舞)를 추다가 왕을 찌르고, 자신은 백제인 들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였는데, 신라 사람은 이를 슬퍼하여 황창랑의 모습을 그린 가면을 쓰고 검무를 추는 풍속이 지금도 전해 온다고 하였으며, <무예도보통지>에는 황창랑의 검술로부터 본국검의 술법은 실전(失傳)되어 오래도록 전하지 않다가, 중국의 모원의(暮元義)가 조선의 옛 검법인 <조선세법(朝鮮勢法)>을 우리나라에서 찾아 <무비지(武備志)>에 채록함으로써 <무예도보통지>에도 그 검보(劍譜)를 수록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모원의가 국내에서 찾았다는 것은 군영이 아닌 민간에 전수되고 있었던 것을 병법으로 채택하여 무비지에 수록하게 된 것으로 추정한다.


    민족 화랑무예 ‘본국검’으로 세계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자

    현존하는 민족무예 본국검은 1980년 봄에 민족무예 본국검보존연구회를  조직하여 전통무예의 체육화를 위해 연구해 왔고, 법인단체를 설립하여 국내에 보급한지 어연 30년이 지났다. 그동안 본회의 연구진이 유구한 민족유산인 본국검의 콘텐츠를 여러 시행착오를 경험하므로 해서 현대의 시대정신에 알맞게 과학적, 체계적으로 편성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개발하였고, 대중적 전통무예스포츠로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체계를 세웠다.
    이제, 수천 년의 역사와 함께 그 맥을 계승해온 민족 화랑무예 본국검은 국민적 전통스포츠로, 나아가 세계적인 전통스포츠로 보급할 준비를 완벽히 마쳤다.  

    이런 유구한 전승 역사와 커리큘럼을 온전히 보유한 민족무예 본국검을 태권도와 같이 국가의 문화 브랜드로 개발 육성하여 국내의 내수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나아가 세계적인 무예로 발전시켜 해외 인력수출과 문화 수출로 국가경제에 도움을 줄 수가 있고, 국가의 신용도와 경쟁력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도록 정부는 적극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며, 우리 무도를 사랑하는 국내 무도, 무예인과 해외의 무도인 들도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길 바란다.

    4.  K-pop과 같이 전통무예로 한류문화 부흥시키자

    이제는 한국의 성장 경제 발전은 해외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이 땅에서의 경제활동은 한계가 있다. 우리 젊은 인재들이 세계를 무대로 마음껏 활동하여 경제적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K-pop이 동남아에서 구미와 남미와 유럽으로 진출하여 세계인의 가슴에 한류 문화의 우월성과 가치성을 인정받아 대단한 열풍을 일으켰다.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인이 호응하고 우리 문화가 세계화에 대열에 당당히 자리매김을 받은 것이다. 이는 수천 년 유구한 역사와 우수한 문화를 지닌 우리 한민족의 비축된 저력이다. 우리는 예부터 예상하고 있었으며. 당연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과거 60년 전 민족상잔의 아픔으로 폐허가 된 우리 국토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세계적 수준의 번영을 이루어 낸 것은 우리 민족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 우수성과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를 지닌 혈통을 소유하였기 때문이다. 단지 과거 역사에서 보았듯이 너무 머리가 뛰어나 공동체적인 정서로 국민적 단합을 하지 못하고, 개인주의적 사고와 이기주의적 사고로 인해 같은 민족끼리 단합하지 못하고 분열하였기 때문에 비극적 역사의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다변하는 국제적 경쟁 구도 속에서 단합하지 않으면 치열한 세계경제의 대열에서 도태되기 때문에, 우리 민족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함으로 해서 국가적 사고와 국민적 인식이 많은 변화에 적응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1,000번의 외침에도 굳건히 나라를 지켜온 그 내면에는 위대한 전통무예와 상무정신이 근간이 되었다. 그러한 자랑스러운 전통무예와 상무정신을 온 국민이 체험하고 건강스포츠로 즐기므로 해서 무너져 내린 사회 정의와 도덕 불감증을 상무정신을 통하여 선조들의 모범된 인성과 도덕을 습득하도록 하여 정의롭고 도덕이 바로서는 나라로 국가 개조를 해야 할 것이다.  

                                  
                                                                             2014. 8. 5

                                                              
                                                                         한국무예신문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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